2011년 2월 19일 토요일

12-18 몽골을 조금 더 알다

  오늘은 몽골에 대하여 한발자국 더 나아갔던 하루였다. 그리 좋은 경험은 아니지만, 몽골을 알고 이해 하기 위해 꼭 겪었어야 하는 경험이라고 생각한다.

  현석이랑 영진이랑 함께 신발을 사러 썬대이프라자로 향하였다. 우리나라 동대문처럼 7~8층 되는 복합 상가에 수 많은 상점들이 들어와 있었다. 영진이의 겨울 모자를 고르러 이 상점 저 상점을 돌아 다녔다. 두 번쩨 상점 이였을 것이다. 우리끼리 들떠 한국말을 하며 서로 이 모자 저 모자를 고르고 있었다. 그때는 상점에 누구누구가 있었는지 미쳐 신경조차 쓰지 않고 완전 무 방비(?) 상태로 있었다.
  순간 옆에 있던 젊은 사내가 영진이의 안경을 벗겨내고는 바닥에 놓는다. 우리 세 명은 무슨 영문인지 몰라 빤히 쳐다보고 있었다. 머리를 밀고 군복을 입고 목에는 나치표시가 있는 목걸이를 하고 있는 그 몽골 사람은 바닦에 놓은 안경을 밟는 시늉을 한다. 영진이는 “야갇?(왜?)” 이라고 왜 치며 안경을 주었다. 그 젊은 친구는 영진이에게 주먹으로 얼굴을 가격 하는 시늉을 하였을 때에서야 나는 상황이 좋지 않음을 알고, 다른 대로 가자고 하곤 영진이가 써봤던 모자를 제자리에 놓고는 뒤돌아 섰다. 거기서 끝났으면 그리 기억에 남지 않는 평범한 하루였을 것이다. 하지만 뒤돌아서 나가려는 순간 그 사람의 두 손은 내 멱살을 잡고는 나를 죽일 듯이 노려 보고 있었다. 당황 하였지만 정신을 바짝 차려야 한다는 생각과 하지만 상황을 더 악화 시키지 않기 위해 노려 보는 것도 아닌, 쫀 것도 아닌 조금은 애매한 눈 빛으로 마주 보았다. 주변에 있던 다른 몽골 사람들이 뭐라고 하자, 내 멱살을 내려 놓는다. 기분과 감정이 상한 나는 다시 한번 눈에 힘을 주고 쳐다 보곤 가능한 한 빨리 그 상황에서 벗어나기 위해 매장의 문을 나왔다. 문을 나오는데 이상하게도 곧 뭔가 일어 날 것이란 것이 감각적으로 알아차렸다. 파리채와도 같이 그 사람의 손바닥이 내 뒤통수를 철석 강타 하였다. 그 당시, 나는 이성을 일고 되돌아가 끝을 보려고 하였다. 하지만 정말 다행히 영진이와 현석이가 내 두 팔을 붙잡았다. 지금 생각 해보면 정말 이 둘에게 감사해야 할 것 같다. 만약 그들이 나를 그냥 내버려 두었다면, 오늘 일은 몽골의 한 모습을 보는 것에 그치지 않았을 것이다. 이상한 것은 뒤통수가 아직 얼얼 하기는 했지만, 기분은 그리 나쁘지는 않았다. 마치 언젠간 일어날 일일 것이라고 예상 하고 있었듯이... 조금은 새로운 경험을 했다는 것에 오히려 모험을 한듯한 기분이랄까~ 그리 나쁘지는 않다.

하지만 이런 일들은 같은 날 겹쳐서 일어난다고... 저녁에 동기들과 몸보신을 하기도 해서 말고기 탕을 맛있게 먹고 돌아 오늘 택시에서 또 한번 일이 터졌다. 잘 모르는 길로 다려 집으로 온 택시는 평상시보다 2배로 택시비를 부른다. 아무리 따져봐도 꿈쩍 않으며 12킬로 나왔으니 6000 ₮ 을 내라고 단호히 말한다. 보통 6 킬로가 정상이다. 아직도 왜 12킬로가 나왔는지 이해가 안 간다. 아무리 돌아와도 그렇지... 그냥 달라는 값을 지불하고 택시를 내렸다. 기분이 상해서 그랬는지 모르겠지만, 문을 조금 감정적으로 쌔게 닫고 나왔다. 그때도 뭔가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택시의 액셀 소리가 강하게 나고는 원을 그려 돌아와선 현석이를 거의 칠 뻔 하였다. 그리곤 창문을 열고는 나를 부른다. 무시하고 갈려 했지만, 상황을 더 악화 시키는 것일 것 같아 대꾸를 해주었다. “야가드?” 씩씩 거리며 택시기사가 내리고는 내 면상에 주먹을 들이 대며 화를 낸다. 하지만, 이미 당황 할 것을 다 당해서 그런지, 그저 쳐다보았다. 오늘 왜 이러냐... 하며... 같이 온 일행이 뭔 일인가 싶어 다시 돌아오니, 두말 안고 차로 돌아가 떠나 버린다.
  아~ 이것이 그 몽골이구나~ 기분 나쁜 일이어야겠지만, 새로운 경험을 했고, 또 그 당사자가 나라는 것에 왠지 모를 깨 달음을 얻을 때의 느낌 이랄까, 나쁘지 않다. 지금까지 너무 좋은 모습만 봐 왔었는데, 이제서야 몽골의 배일이 조금 벗겨진 것 같다. 또한 정말 몽골어를 열심히 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뭐라 말 대꾸 라도 하려면... 그리고, 순간에 감정을 제어 하지 못하면, 결국 큰 일을 치를 것 같았고, 또한 조금 쪽 팔려도 참는게 가장 좋은 방법인 것을 실감 했다. 어찌 됐건 여긴 몽골이다. 그리고 나는 외국인 이방인이다. 봉사고 모고 간에 난 이들에게 이방인이다. 완전 히 몽골 사람이 되기 전에는 참자. 완전한 몽골 사람이 된 후 그들과 똑같이 싸우더라도~~~

2010년 11월 27일 토요일

몽골 양고기

몽골 양고기


몽골에 온지도 어느덧 3주차, 유내스코지정 관광지인 테를지에서 점심으로 양갈비를 먹었다. 우즈벡에서 떠나기 몇일전 너무나 부드러운 양갈비를 뜯었다. 7년간 그 맛이 마지막일 줄은 몰랐다. 한국에 있는 내내 우즈벡 하면 항상 그 양갈비의 향기가 떠 울랐다. 오늘 먹은 양갈비를 맛 보는 순간, 그때로 돌아 간것 같았다. 오... 나의 양고기여...

부드러운 몽골 양고기. 전통 음식으로 달군 돌위에 굽는 다고 한다.
몽골에서 꼭 먹어봐야 할 음식~~


참 신기하다. 우즈벡에서 주식으로 먹던 양고기에게서 냄새가난다고 생각 한적은 단 한번도 없었다.  하지만 한국에선 양고기 하면 먼저 양고기의 비린 냄새를 생각 한다. 하도 듣다 보니 내 코가 민감해진건가? 전에는 맡지 못했던 양고기 냄새를 맡을 수 있다. 하지만, 여전히 맛있다. 깊고 구수한~~ 다시 양고기 냄새를 잊어 버리겠끔 많이 먹고 가야하겠다.

코이카 현지 훈련중 단원들과 함께 만들어 먹은 양고기 수육

몽골 출국 전 한국의 최첨단 기술을 만나고 가다

출2010-11-10 몽골 출국 D-1

 코이카 협력 요원 몽골 출국 전, 한국의 최첨단 기술을 만나고 가다

  세상은 빠른 속도로 변하고 있다. 오늘 만난 현석이 형은 kt에서 IT와 건축의 통합의 중심에 서있다.
형이 보여준 신기술들은(주로 아이폰을 이용한) 마치 소설 속의 일들이 현실로 다가 오고 있는 듯하다. 내 손안의 컴퓨터인 스마트폰으로 이제는 모든 것들을 한다.
  어찌 보면 각각의 기술들은 그리 대단한 기술은 아니지만, 기술 하나하나가 모여 더 첨단 생활들을 이루어 내고 있다. 신기한 것들은 모두 우리가 한번쯤 생각 했던 것들이다. 하지만, 생각은 누구나 한다. 다만 그것을 현실로 이루어내는 사람들이 대단한 사람이다. 아이페드로 주문을 하고, 쇼핑을 하고, 동화를 읽고~ 등등.

현석이형이 카페에서 실시간으로 사진찍어
 보정해줘서 내개 보내준 사진

  하지만, 한가지 우려 스러운 것이 있다. 기술이 사람을 대신 하고 있다. 예전에 힘들고, 위험한 일들은 기술이 대처를 하며 사람을 위험과 힘든 고통에서 구원을 주는 듯 했다. 하지만 이제는 그선을 넘어서 사람과 사람의 관계를 대신하고, 사람과 사람의 사랑을 대신한다. 어린 아이가 침대에 누워 있으면 아이페드는 그 아이에게 엄마 아빠대신 동화책을 읽어준다. 더욱 재미있는 목소리로, 재미있는 영상으로. 이제 머리 곁에 앉아 머리를 스다드며 주며 아이에게 동화를 읽을 날이 별로 안 남은 것 같다.

  기술이 과연 인간을 대신 할 수 있을까?  
  아닌것 같다. 현석이 형은 최첨단을 경험하며 살아가고 있다. 하지만 최첨단의 한가운데에 있는 형은 외로워 보인다. 기술이 없을 때에도 기술이 넘쳐 날때에도, 아무리 최첨단 기술일 지라도 사람을, 사랑을 대신 할 수 없을 것이다. 다만 그렇게 보여 질 수는 있겠지만, 아니 오히려 실제의 사람과 사랑을 방해 하는 것일 수도…